경북 의성군 금성면 한 마을. 살림집과 창고, 마늘건조장 등 대부분 건축물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다.
슬레이트 지붕이 유난히 많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의 한 마을. 이곳 마을은 35가구 가운데 20가구 정도가 30~40년이 지난 낡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여 있다. 28번 국도를 끼고 있는 경북 예천군 지보면의 한 마을 역시 100여가구 중 슬레이트 지붕이 60%가 넘는다. 살림집에다 창고와 축사, 마늘건조장 등 부속건물까지 포함한다면 슬레이트 지붕이 없는 가구가 없을 정도다.
이 두마을 주민들에게 4월29일 발효된 ‘석면안전관리법’이나 서울시의 슬레이트 지붕 전량 철거 소식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예천군 지보면 소화2리 김수희 이장은 “대부분의 슬레이트 지붕이 내구연한 30년을 넘어 바람에 날리고 빗물에 씻겨 나오는 1급 발암물질 석면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데도 정부나 지자체의 대책은 한개 읍·면에 서너채를 철거하는 것이 고작”이라면서 “이럴 바엔 석면안전관리법이니 발암물질이니 해서 주민들에게 불안감이나 조성하지 말든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도내 슬레이트 지붕은 주택 14만3,000동을 포함, 축사 2만2,000동, 창고 공장 1만1,000동 등 무려 19만4,000동에 이른다. 이는 전국 슬레이트 지붕 123만동의 15.7%를 차지한다.
반면 올해 경북도가 철거키로 한 농어촌 슬레이트 지붕은 모두 1,321동. 이는 지난해 325동에 비하면 4배 가까이 늘었지만 이런 추세라면 주택지붕 14만3,000동을 철거하는 데만 110년, 슬레이트 지붕 모두를 걷어 내는 데는 무려 146년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는 환경부에서 추진하는 슬레이트 지붕 철거 지원사업을 비롯해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주택 개량사업 및 국토해양부가 추진하는 주택개보수사업, 시·군별 빈집 정비사업 비용이 모두 포함된 것이다.
여기에다 철거비용 자부담은 더욱 큰 걸림돌이다. 현재 정부가 추산한 슬레이트 지붕 1동당 철거비용은 200만원. 이 가운데 40%인 80만원이 자부담이다. 슬레이트 철거 후 새로 지붕을 이는 비용은 가구주 부담이라 웬만한 가구는 지붕개량에 엄두도 내기 어렵다.
농업인 김도영씨(60·의성군 금성면)는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은 대부분 저소득이나 독거노인들이 사는 살림집이라 철거비 일부만 지원해서는 지붕을 교체할 수 없는 처지”라면서 “주민건강 보호와 농어촌 마을 정비, 농어민 삶의 질 향상 차원에서 특단의 정책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4월18일 ‘경북도 석면 슬레이트의 철거 및 처리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한 배수향 경북도의원은 “경북 도내 모든 석면 슬레이트 건축물을 철거하는 데만 3,88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면서 “발암물질인 석면 슬레이트 건축물 철거는 국민의 건강보호와 농어촌 마을 정비, 그리고 지난 1970년대 정부 주도의 슬레이트 지붕개량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중앙정부의 대폭적인 예산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성·예천·대구=유건연·한형수 기자 hshan@nongmin.com